2015년 11월 7일 토요일

[사보루]어쩌면 좋을까.

[사보루]어쩌면 좋을까.

ㄴ부제 : 쇠사슬로 묶고, 날개를 부러트리고, 다리를 망가트려 내 곁에 둘까?

ㄴ[원피스/단편/전체 관람가]






 “루피.”

 사보가 나지막이 루피의 뒤에서 이름을 불러본다. 평소의 루피라면 사보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기도 전에 기척을 알아차리고 활짝 웃으며 뒤를 돌아봤겠지만 오늘은 달랐다. 약간의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사보를 보며 뒤늦게 웃음을 짓는다.

 “오-, 사보! 벌써 밥 시간 때가 된 거야?”
 “아니, 그전에 네가 간식 먹겠다며 점심 밥 다 먹었잖아?”
 “에? 그랬나?

 잠깐, 그러면 지금 밥이 없다는 거야?! 비명과도 같은 루피의 외침에 사보는 못 말리겠다는 듯이 한 손으로 루피의 머리를 쓰담았다. 사보는 자기의 주머니를 한번 뒤져보고는 고민을 하다가 돈이 왕창 깨지겠지만 루피를 데리고 음식점에 가기로 결심을 했다.

 “루피, 우리 오랜만에 라면 먹으러 갈까?”
 “라면?!”
 “상디가 밥을 만들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으니까……, 그전에 뭐 좀 먹어두자고.”
 “라면, 라면, 라면!”

 눈을 반작이며 입가에 침을 흘리는 루피는 오랜만에 먹을 라면 생각에 길도 모르면서 팔을 쭉 뻗어 저 멀리 있는 큰 돌을 잡았다. 순간, 사보는 뭔가 안 좋은 낌새를 느끼고 루피를 부르려고 했지만 이미 루피의 다른 손이 순식간에 사보의 허리를 감싸고 난 뒤였다.

 “간다!”
 “잠깐, 루ㅍ…….”

†   †   †   †   †

 “주문하시겠습니까?”
 “특대 라면 열 아홉 그릇!”
 “금방 대령하겠습니다!”

탁.

 문을 닫고 나간 종업원을 보면서 루피는 최대한 빨리 저 종업원이 되돌아오기를 바랬다. 그리고는 식탁에 금방이라도 토할 표정을 짓고 있는 사보를 보면서 이상한 걸 보는 마냥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사보, 어디 아파?”
 “……아니다.”

 차마, ‘너 때문이잖아’ 라고 말을 할 수 없었던 사보는 그저 가만히 울렁거리는 속을 진정시켰다. 멀미 같은 것은 별로 가지고 있지 않는 사보였지만 억센 힘으로 갈비뼈를 거의 누르다시피 허리를 감싸고 허공을 빠른 속도로 날아간 것은 별개의 상황이었다.

 “라면, 라면! 빨리 라면 먹고 싶어!”
 “누구 동생 아니랄 까봐 먹는 것에 껌벅 죽네.”
 “그……, 건 사보도 마찬가지잖아!”

 잠시 주춤거리던 루피가 인상을 쓰고 사보에게 역으로 말을 해본다. 그에 사보가 말을 되받아 쳐주려고 했는지 입을 열려다가 밖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가만히 있었다.

 “라면 열 아홉 그릇 대령합니다!”
 “라면이다!”

 대략 일곱 명의 종업원이 각자 세 그릇의 라면을 들고 들어왔다. 루피는 라면을 보면서 한 그릇이 내려지자마자 바로 젓가락으로 라면을 흡수하다시피 먹어댔다. 그러면서 루피는 ‘열 그릇 더!’ 라는 말을 빼먹지 않았다.
 종업원의 눈들이 빛난다.

 “열 그릇 더 달라신다!”
 ‘왕창 깨지겠구먼…….’

 자신의 주머니가 털려나가는 순간을 목격하는 사보의 얼굴에 어두운 빛이 내려온다. 반면에 옆에 있는 루피의 얼굴엔 빛이 광나고 있었다. 사보는 그런 루피를 보면서 ‘그래, 돈이 깨지면 어때. 루피가 좋아하는데’ 라며 웃음을 지어낸다.

 “사모도 머거(사보도 먹어)!”
 “아니, 그전에 벌써 네 그릇 밖에 안 남았어!?”

 재빨리 라면 한 그릇을 집어다가 입으로 처넣는 사보와 또 다시 종업원이 들어와 두고 간 라면을 더욱 빨리 먹어 치우는 루피의 모습은 누가 봐도 형제의 모습이었다. 다만, 사보는 루피와 비슷한 대식가지만 먹는 속도가 루피만큼은 빠르진 않았다.

 “꺼억. 잘 먹었다.”
 “쩝……, 맛있었다.”

 배가 부른 루피가 몸이 노곤해진 것인지 눈이 살짝 풀리고 의자에 등을 기대고 늘어졌다. 그리곤 곧바로 코를 골며 잠에 들었다. 사보 또한 약간 비슷한 상태였지만 그래도 루피보단 적게 먹어서 덜 졸리는지 잠을 자진 않고 의자에서 일어나 방에 있던 창문을 열어 라면 냄새가 빠져나가게 했다.

 “나 참, 여기서 자면 어떡하자는 거야.”

 말은 저렇게 하는 사보지만 속마음은 전혀 다르게 생각하고 있었다. 루피의 자는 모습이 한없이 귀엽기만 하기 때문이었다. 사보는 지금 이 시간이 계속 지속되었다면 좋겠다는 욕심 담긴 말을 삼킨다.

 “……그나저나.”

 한껏 애정을 담아 루피를 바라보던 사보의 표정이 점차 굳어져갔다. 루피의 동료들이나 사보나 직접적으로 말을 꺼내진 않았지만 다들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고 있기에 다들 루피에게 말을 거는 걸 꺼려했다. 그리고 루피 또한 말을 하길 거부하는 분위기를 냈었다.
 하지만 형제인 사보에게만큼은 거부하기가 그랬는지 이렇게 같이 있는 것이었다.
 혹은 사보이기에 이렇게 맘을 풀고 있는 것일 수도 있고.

 “에이스…….”

 조심스럽게 에이스의 이름을 내뱉으니까 루피가 그에 반응하여 움찔거리며 코골던걸 멈추었다. 하지만 눈은 뜨지 않았기에 사보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오늘은 루피와 사보 자신에게 아주 특별한 날이다. 앞서 말했기를, 루피의 동료나 사보가 알곤 있지만 직접적으로 말을 꺼내지 않는 오늘.
 에이스의 기일(忌日).

 “어찌 이 어린 동생을 두고 가버린 거냐…….”

 에이스가 원해서 루피를 두고 먼저 하늘로 간 게 아니란 걸 알고 있는 사보지만 가끔 루피가 기력이 없는 모습을 보이거나 멍을 때리고 있을 때 보면 에이스의 부재가 너무나 마음이 아파왔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에이스를 향한 분노와 질투도 솟아 올라 원망을 했었다.

 “……루피.”

 창문 근처에 서 있던 사보가 루피의 의자 뒤에 서서 가만히 루피를 내려다 보았다. 루피의 까만 머리카락을 쓰담으려는 듯 손을 뻗다가 주춤거리고선 손을 내린다. 그 다음엔 무언가 말을 하려는 듯 입을 우물거리다가 입술을 깨물고선 인상을 팍 썼다.
 사보는 지금 이상한 감정에 휩싸여 어떻게 판단을 해야 할지 모르고 있었다.

 “만약……, 내가 거기에 있었으면. 상황이 달라졌을까?”

 정상결전-혹은 정상전쟁이라 불리는- 때에 자신이 그곳에 있었더라면 조금이라도 에이스가 살 희망이 있지 않았을까, 에이스가 붙잡혔단 소식을 알고도 가지 않았던 자신의 행동이 이런 결과를 만든 것은 아닐까.
만약, 자신이 그곳에서.

 “대신 죽었더라면……, 넌 괜찮지 않았을까?”

 힘겹게 말을 꺼낸 사보는 혹시나 루피가 들을 까봐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사보 본인은 가끔 루피를 보면 이런 생각을 주로 하곤 했다. 루피는 에이스를 절대 잊지 못하고 에이스에게 묶여서 살 것이라고. 티는 내지 않겠지만 매일 밤 남들 몰래 눈물을 삼키며 꿈속에서 에이스를 만나 그와 얘기하며 즐겁게 떠들 것이라고.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사보가 에이스에게 질투를 느껴 나타나는 것이었다.

 “매번 멍 때리는 횟수가 늘 때마다…….”
 ‘네가 에이스를 생각할 때마다.’
 “내 마음을 몰라줄 때마다…….”
 ‘옆에 있는 난 생각하지 않을 때마다.’

 말을 하면서 사보는 자기가 주먹에 힘을 주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감정이 조금씩 격해지니까 사보의 주먹에서 금방 조그마한 불길이 일어났다. 그걸 느낀 사보는 불을 보고서 끄려다가 왠지 모르게 자신이 에이스와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에 분노를 느꼈다.
 에이스와 별반 다른 것이 없는 자신인데, 왜 루피는 날 봐주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머릿속에 든 것이다.

 “내 자신이 너무 짜증나.”

 가만히 루피를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자신에게, 형제인 에이스에게-그것도 죽어버린- 분노를 느끼는 자신에게 사보는 눈물밖에 나지 않았다. 자신에 대한 경멸과 죄책감, 후회, 슬픔, 외로움, 등등 수많은 감정이 뒤섞여 엉망이 되어간다.
 제 앞에 있는 천사를 코앞에 두고도 잡지를 못하니, 답답함도 느낄 것이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제 앞에서 사라지지 못하도록 쇠사슬로 묶고, 날지 못하게 날개를 부러트리고, 걷지도 못하게 다리를 망가트리고픈 감정에 휩싸일 것이다.

 “내가 널 어쩌면 좋을까, 루피.”

 사보의 눈물이 흘러 루피의 뺨에 닿는다. 차가운 무언가가 얼굴에 몇 방울 떨어져서 그런지 루피는 잠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눈을 뜨자마자 울고 있는 사보를 보고선 큰눈을 뜨다가 뒤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열기에 사보가 이상하단 걸 눈치챘다.

 “사보?”
 “……루피.”

 곧은 눈동자 안에 비치는 자신의 불타는 모습에 사보가 급히 불을 끈다. 만약 사보가 루피의 눈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지 못했더라면 그대로 가게와 함께 루피랑 같이 불타 죽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왜 그래? 왜 울어?”
 “루피…….”

 걱정스런 표정으로 자신을 살피는 루피를 보면서 사보는 조심스레 손을 뻗는다.

 “?”
 “……루피.”

 처음엔 머리만 쓰담다가 손을 내려 이번엔 뺨을 만져본다. 그러면서 사보는 무심코 루피에게 ‘내가 대신 죽었으면 더 좋았텐데.’ 란 말을 내뱉고 만다. 루피는 사보의 말을 듣고 화가 끝까지 난 얼굴로 사보의 손을 탁 잡는다.

 “그런 소리 하지…….”
 “그럼 이제 그만 날 좀 봐주라.”

 헛웃음을 지으며 뱉은 사보의 말에 루피가 화를 내다가도 말고 주춤하며 사보의 손을 잡고 있는 자신의 손에 힘을 푼다. 사보는 루피에게 잡혀있지 않는 다른 손으로 루피의 얼굴을 만졌다. 처음엔 눈 밑의 흉터를, 다음엔 콧대를, 이윽고 입술을.

 “어쩌면 좋을까.”

 꽤나 당황한 루피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사보가 하는 행동을 가만히 놔두고 있었다. 사보는 루피에게 잡힌 손에 힘을 주어 루피의 가슴 쪽으로 손을 옮긴다. 루피의 손이 힘없이 따라간다.

 “내 곁에서 떨어지지 않게 묶어둘까.”

 가슴에 있던 손이 이번에는 루피의 한쪽 팔을 매만진다.

 “날아가지 못하도록 이 팔을 부러트릴까.”

 한쪽 무릎을 꿇으면서 팔을 매만지던 손을 다리로 옮겼다.

 “나에게만 의지하도록 다리를 망가트릴까.”

 루피의 다리를 만지는 사보의 손길을 몹시 나도 위협적이면서 매혹적이고, 아슬아슬했다. 지금의 사보는 거의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였다. 어떤 행동을 할지 예상이 불가능하고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과도 비슷했다.
 그래서 루피도 선뜻 사보에게 무어라 말을 걸 수 없었다.

 “루피, 나의 동생 루피.”

 사보가 루피의 손을 당겨 손등에 키스를 남겼다. 루피가 움찔하니까 사보는 루피의 손가락 끝을 잘근 물었다가 루피의 손을 자신의 뺨을 만지도록 바꿔 천천히 일어섰다.

 “어리고 어린 나의 천사, 루피.”

 자신 때문에 두려움에 떨고 있는 루피를 보면서 사보는 묘한 쾌감을 느꼈다. 왜 이렇게 마음이 변질되었는진 모르겠지만, 사보는 이대로도 좋을 것 같단 생각을 했다.
 그래서 얼굴을 숙여 키스를 했다.
 짙은 키스 후에는 루피에게 이 말을 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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